[9.22] 레베카 솔닛

재난disaster이라는 말은 ‘멀리’ 또는 ‘없음’을 뜻하는 라틴어 dis와 별 또는 행성을 뜻하는 astro의 합성어다. 문자 그대로 별이 없는 상태다.  (…) 재난이 닥친 도시들에서, 사람들은 문득 자신이 지금은 아주 외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별들의 지붕 아래 있음을 발견했다. 2003년 8월 15일 무더운 밤, 뉴욕시에서는 은하수가 보였다. 그것은 그날 늦은 오후에 북동부 지방에서 정전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볼 수 없던, 오래전에 사라진 ‘낙원의 영역’이었다. 우리는 현재의 사회질서를 인공불빛과 비슷한 것, 즉 재난 시에 끊어질 수 있는 또 다른 종류의 전력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 빈자리로 즉흥적이고 집단적이고 협동적이고 국지적인 사회가 복귀한다. 밤하늘에 갑자기 나타나는 별들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요즘은 별빛에 비추어 길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연대와 이타주의와 즉흥성의 별자리는 우리 대부분의 마음속에 숨어 있다가 이런  순간에 다시 나타난다. 사람들은 재난이 닥쳤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현대적 의미에서 정전이라는 재난은 불행이지만, 이 오래된 천체들의 출현은 이와 반대다. 재난은 지옥을 관통해 도달하는 낙원이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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